국제 ESG 공시표준인 ESRS와 ISSB는 성격이 달라
ISSB 방식 선택한 한국, 유럽만 보고 급할 이유 없어
돌다리 두드리며 공시 제도 튼튼하게 정착시켜야

금융위원회가 ESG 지속가능성 공시 의무화를 위한 각계의 의견 수렴을 마치고, 곧 로드맵을 발표할 예정이다. 최종 로드맵은 지난 2월 금융위가 제시했던 초안에 비해 좀 더 강화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가 수렴한 의견 중에는 이번 로드맵이 지난 2021년 문재인 정부 최초 계획에 비하여 한참 축소되고 후퇴했다는 비판이 많았다고 한다. 환경·시민단체들이 특히 그랬다. 국제적인 정합성을 문제 삼는 의견이 있었고, 공시 지연으로 인한 투자자 이탈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컸다. 속도를 더 내라는 압박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속도를 내 달리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정부 계획대로 2028년부터 공시에 나서야 하는 자산 30조원 이상 대기업들은 2027회계년도 데이터부터 공시를 목표로 관리에 들어가야 한다. 또한 자산 10조원 이상 기업과 자산 2조원 이상 기업들도 1~2년 시차를 두고 단계적으로 공시에 돌입한다. 더딘 진행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 공시를 해야 하는 기업들로선 매우 빠듯한 일정일 수도 있다.
특히 ESG 공시 의무화는 속도 이전에 제도의 완성도와 신뢰성을 갖춰 시행하는 게 중요하다. 자칫 조급한 도입이 가져올 부담과 혼란을 살피는 신중한 태도도 필요하다. 사실 국제적으로도 속도 조절에 나서는 국가들이 많다. 유럽연합(EU)이 옴니버스 패키지 입법을 통해 공시의 시기와 범위를 대폭 조정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기후 공시를 아예 중단시켰다. 한국의 2028년 공시 개시는 글로벌 흐름에 비춰볼 때 그렇게 뒤쳐지는 게 아니다.
EU는 ‘규제형 공시’ 채택해 공시 강제
세계의 지속가능성 공시에 관한 논의는 2020년 전후로 급물살를 타기 시작했고 2023년 두 종류의 공시기준이 확정되면서 현실로 다가왔다. 하지만 두 가지 기준에 따른 공시는 지속가능성 공시라는 동일한 이름을 사용하고 있지만 목적도 성격이 매우 다른 별개의 제도로 볼 수 있다.
유럽연합(EU)이 채택한 유럽지속가능성보고표준(ESRS)에 따른 공시는 기업 활동에 대한 각종 규제의 준수 여부를 외부에 알리는 규제형 공시로 분류된다. 이에 비해 국제회계기준(IFRS) 산하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가 제정한 공시는 투자자와 주주의 관심사항인 사업 활동의 보고를 목적으로 하는 주주보고용 공시다.
전자가 기업 활동의 제약요인인 규제와 관련된 컴플라이언스 활동을 보고하는 데 비하여 후자는 기업의 본업인 사업 활동을 보고한다는 점에서 그 성격은 매우 다르다.
다만 ESRS 공시와 ISSB 공시가 모두 비재무성 공시이고 둘 다 기업의 내부가 아닌 외부 환경과 관련된 사안들을 다룬다는 공통점이 있어, 두 공시의 차이를 일반인들이 분별하기는 쉽지 않다.
규제형 공시인 ESRS 공시는 기업이 규제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으며 그 결과가 무엇인지를 공개하는 것이 목적이다. 물론 공시의 원천이 되는 규제가 국가나 규제 기관이 정한 법률규제나 행정규제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제도화되지 않은 시장 내의 자발적 규율이나 규칙, 관행, 도덕적인 가치 등 비법률적이고 비행정적인 규제까지 포함된다. 온실가스 감축, 금지된 화학물질의 사용 제한, 오염물질 배출 금지 등이 전자라면 인종 다양성이나 정보 보안 등은 후자에 속한다.
EU와 EU에 속한 국가들은 입법을 통해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들로 하여금 ESRS 공시를 강제하고 있으며 이미 2025년 수백 개의 기업들이 공시를 시작했다. ESRS 공시 의무는 EU에 속한 국가의 기업에 국한하여 부과된다.
물론 역외 기업에 대해서도 확대 적용되어 2029년부터는 EU에 진출한 국내 기업 중에서도 의무적으로 공시를 해야 하는 기업들이 일부 나오지만 국내 기업 모두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대부분 국내기업들에 ESRS에 따른 규제형 공시여부는 선택사항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국내기업이 규제형 공시인 ESRS 공시를 하지 않았을 때 받을 수 있는 불이익이 무엇인가이다. 유럽의 공급망으로부터 배제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한 불이익이다.
하지만 공시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 해당 기업의 기업가치가 훼손된다고 보기는 힘들다. 시장의 투자자들이 해당 기업에 대한 투자를 외면할 것이란 주장도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다.
한국 등 비유럽국은 ‘주주보고용 공시’ 채택
한국과 일본 등 비유럽 국가들이 도입을 추진 중인 ISSB 공지는 ESRS 공시와는 다른 주주보고형 공시이다. 이 공시는 기업 활동의 결과를 보고한다는 점에서 재무공시와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다만 재무공시가 기업의 활동 결과를 사업실적 보고의 방식으로 공개하는 데 비하여 지속가능성공시는 기후 등 외부 여건의 변화에 대한 기업의 대응이나 대비 활동을 비재무적으로 공개한다는 점에서 재무보고와 차이가 있다.
기업이 급변하는 외부 환경의 변화로부터 사업과 관련된 기회와 위험을 찾아내고 이를 활용하거나 극복해 나가는 활동은 기업의 미래가치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변수다. 주주와 투자자들에게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개별 기업이 공시를 통해 그 활동 내용을 투자자들에게 알리는 것은 기업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높이고, 이는 다시 기업가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ISSB 기준 공시가 보편화되는 상황에서 이를 피하거나 게을리 한다면 그 기업에 대한 시장의 평판은 하락하고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게 될 공산이 크다.
도입 시기·방법 국가 별로 다양한 길 선택
다만 주목할 것은 ISSB 공시 제도는 대부분 비유럽 국가들에 의해 도입이 추진되고 있는 만큼 그 도입의 시기와 방식을 결정함에 있어 편차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경우 연방정부 차원에선 지속가능성 공시 제도의 도입이 중단된 가운데 주 정부 별로 독자 도입의 길을 걷고 있다. 다른 나라들도 대부분 제도의 도입은 결정하였으나 그 첫걸음은 기후변화와 관련한 공시에만 국한하고 있다. 모두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주주보고형 공시인 ISSB 공시의 도입은 시장의 신뢰를 얻기 위한 매우 중요한 결정이며 피해갈 수 없는 길이다. 하지만 이 제도의 도입에 대한 국제 사회의 선택은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우리의 결정도 돌다리를 두드리며 튼튼한 길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 이유이다. 유럽 국가들이 ISSB 공시와는 성격이 다른 ESRS 공시를 이미 도입하고 실행한다는 사실만 보고 우리까지 덩달아 조급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김의형 KOSRA 회장
[김의형 한국지속가능성인증포럼 회장/PWC컨설팅 고문]
출처 : ESG경제(https://www.esgeconomy.com)